
건강검진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보통 “힘들어도 대장내시경은 한 번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검사 전날 장을 비우는 과정이 괴롭고 검사 자체도 부담스럽지만, 조기에 대장암을 발견하려면 감수해야 하는 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에게 대장내시경은 단순히 힘들고 불편한 검사가 아니다.
나는 2012년 경추손상을 입은 뒤 신경손상이 남아 있다. 현재 몸 상태로는 일반적인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기 어렵다.
다른 사람에게는 하루 정도 참고 견디면 되는 검사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준비 과정부터 검사 자세와 몸의 반응까지 의료진과 신중하게 따져야 하는 문제다.
그래서 대장암 검진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 한편이 답답했다. 대장암은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장 정확하다고 알려진 검사에 접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피만 뽑아 대장암을 선별한다는 연구
최근 이런 나에게 무척 반가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변정식·홍승욱 교수 연구팀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세포유리DNA 혈액진단법’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혈액 속에는 정상세포뿐 아니라 암세포에서 나온 작은 DNA 조각도 존재한다. 연구팀은 이 DNA 조각의 길이와 말단 구조, 유전체 분포 등을 분석해 암세포에서 유래한 특징을 찾아내도록 인공지능 모델을 학습시켰다.
연구에는 대장암 환자 302명과 진행성 대장용종 환자 108명, 정상 대조군 1,267명 등 총 1,677명이 참여했다.
결과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대장암 환자를 찾아내는 민감도는 90.4%였다. 대장암 환자 10명 가운데 약 9명을 선별했다는 뜻이다. 대장암이 아닌 사람을 정상으로 판단한 특이도는 94.7%였다.
병기별 민감도는 1기 84.2%, 2기 85.0%, 3기 94.4%, 4기 100%로 나타났다. 암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은 진행성 대장용종도 58.3%의 민감도로 찾아냈다. 기존 분변잠혈검사의 진행성 용종 민감도가 25~40%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있는 결과다.
나에게는 편의성보다 ‘검진 기회’의 문제다
비장애인이 이 소식을 접하면 대변을 채취하지 않아도 되고 장을 비우지 않아도 된다는 편리함에 먼저 관심이 갈 수 있다.
그러나 나처럼 경추손상과 신경손상으로 내시경을 받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
이것은 단순히 편한 검사가 하나 더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사실상 닫혀 있던 검진의 문이 열릴 가능성이 생겼다는 뜻이다.
척수손상이 있는 사람은 신경인성 장으로 장을 비우는 과정이 더 복잡할 수 있다.
모든 척수손상 환자가 내시경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아니며 전문적인 준비를 통해 검사받는 사람도 있다. 다만 일반인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개인의 손상 부위와 건강 상태에 따라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다.
실제 연구에서도 척수손상 환자의 대장내시경은 장 정결과 신체 관리에 특별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채혈만으로 대장암 위험을 먼저 선별할 수 있다면 장애인과 고령자, 기저질환자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병원에 가서 피를 뽑는 과정도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 정결과 내시경에 비하면 접근성이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혈액검사가 내시경을 완전히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한 가지는 정확히 짚어야 한다. 이번 연구가 “앞으로 대장내시경은 전혀 받을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민감도 90.4%는 매우 높은 수치지만 대장암 환자를 100% 찾아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대로 특이도 94.7%라는 결과에는 암이 없는데도 검사에서 양성으로 나오는 경우가 일부 포함될 수 있다.
진행성 대장용종의 민감도도 58.3%이기 때문에 혈액검사만으로 모든 용종을 발견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다.
대장내시경은 장 내부를 직접 살펴보고 의심되는 조직을 채취하며 용종을 즉시 제거할 수 있다는 중요한 장점이 있다.
따라서 현재 단계에서 혈액검사는 대장암을 확진하는 검사라기보다 위험 가능성을 먼저 가려내는 선별검사로 이해하는 것이 맞다.
결과가 양성이거나 혈변, 원인 불명의 빈혈, 지속적인 배변 습관 변화 같은 증상이 있다면 의료진과 추가 검사 방법을 상의해야 한다.
현재 국가 대장암 검진도 만 50세 이상을 대상으로 매년 분변잠혈검사를 먼저 시행하고, 이상 소견이 있으면 대장내시경 또는 대장이중조영검사를 받는 방식이다. 이번 혈액검사법이 당장 국가검진을 대체한 것은 아니다.
좋은 기술이 실제 검진 기회로 이어지기를
나는 이번 소식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만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한다.
연구 결과가 실제 병원 검사로 널리 활용되려면 더 다양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검증과 비용, 건강보험 적용, 양성 판정 이후의 진료 절차도 마련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연구가 반가운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까지 대장암 검진 방법은 대부분 비장애인의 몸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검사를 받으라고 권하는 것만큼, 검사를 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 가능한 방법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나처럼 대장내시경을 받기 어려운 사람에게 채혈 한 번으로 대장암 위험을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건강을 관리하는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다.
이번 연구가 단순히 편리한 신기술로 끝나지 않고, 장애와 질환 때문에 검진에서 소외됐던 사람들에게 실제로 닿는 검사로 발전하기를 바란다.
나에게 이 소식은 ‘내시경을 안 받아도 된다’는 소식이 아니라, 그동안 받기 어려웠던 대장암 검진을 나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에 더 가깝다.
※ 이 글은 개인의 경험과 공개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정보성 글입니다. 개인별 검사 가능 여부와 적절한 검진 방법은 반드시 담당 의료진과 상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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